전유진이 장덕의 노래 '소녀와 가로동'을 불러 찬사를 받았습니다.
전유진은 1970년대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무대에 나와 가창력은 물론 연기력도 최고였습니다.
'천재소녀' 장덕은 전유진과 비슷한 고등학교 시절에 '소녀와 가로등'을 작곡해 1977년 제1회 MBC 대학가요제 당시 신인 진미령에게 선물한 바 있습니다.
전유진은 탈락 위기에서 패자부활전 끝에 어렵사리 준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전유진의 노래를 들으면서 장덕이 오버랩돼 스쳤는데 '소녀와 가로등' 노래가 무대에 오르는데 송창식의 역할이 컸습니다.
전유진의 현역가왕 방송과 함께 장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현역가왕’이 자체 최고 시청률 15.3%로 또다시 화요일 전 채널 포함 시청률 1위를 석권했습니다.
16일 방송된 MBN 예능 프로그램 ‘현역가왕’ 8회분은 최고 시청률 15.3%, 전국 시청률 14.5%를 기록하며 무려 7회 연속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습니다.
이는 TV조선 미스트롯3 방송의 4회 시청률 14.9%과 비슷합니다.
서혜진PD가 둘 다 연출했는데 자신의 새로운 프로그램 현역가왕이 과거 원조 오디션 미스트롯과 쌍두마차 체제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본선 3차전 뒤집기 한판과 패자부활전을 통해 강혜연, 김다현, 김산하, 김양, 두리, 류원정, 린, 마리아, 마이진, 박혜신, 별사랑, 윤수현, 전유진, 조정민이 천신만고 끝에 준결승 최종 진출자에 이름을 올려 기쁨과 환희, 아쉬움이 뒤섞인 눈물을 펑펑 쏟게 했습니다.
1라운드 12위로 방출 위기의 전유진은 “오랜 시간 무대를 준비하는데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서 공허하다”는 솔직한 심정과 함께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무대로 나섰습니다.
전유진은 장덕의 ‘소녀와 가로등’으로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호흡과 발성, 창법을 선보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울리는 독백 같은 도입부부터 감정의 휘몰아치는 중후반부, 다시 처음처럼 읊조리듯 마무리되는 종반부까지 노래가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안정적이었습니다.
무대를 본 손태진은 “이번 기말고사 때문에 연습을 못 했다고 했는데 이때까지 전유진 양이 가지고 있는 기교를 넘어 새로 장착된 다양한 노래 스킬이 나와서 들으면서 계속 감탄했다”고 말했습니다.
대성은 “노래를 이 정도로 잘하면 굳이 기말고사를 봐야 하나 싶다. 이미 현역고사(?)에서 만점인데”라고 극찬했습니다.
주현미는 “듣는 입장에서 단 한 소절만으로도 곡 전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며 “우리 목소리를 악기라고 하는데 아주 멋진 악기를 가졌다”고 칭찬했습니다.
전유진은 270점 만점 중 252점을 받아 좋은 평가였습니다.
신유는 “유진이 이대로만 크면 대한민국 1등할 거 같다”고 호평을 남겼습니다.
주현미는 “저 나이에 노래를 저렇게 잘할 수 있다는 게. 이은하 씨 등 가수 분들 보면 다 어렸는데 충분히 할 수 있나 보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도”라며 연신 감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윤명선은 “선생님처럼 타고난 거죠”라고 주현미를 포함해 웃음을 안겼습니다.
대망의 본선 3차전 최종순위 발표 결과 1위 박혜신, 2위 윤수현, 3위 김양, 4위 별사랑, 5위 린, 6위 마이진, 7위 조정민, 8위 마리아, 9위 김산하가 준결승으로 직행했습니다.
이어 10위 전유진, 11위 김다현, 12위 류원정, 13위 두리, 14위 신미래, 15위 하이량, 16위 유민지, 17위 강혜연, 18위 요요미가 방출 후보로 최종 확정되며, 살아남기 위한 패자부활전 무대에 섰습니다.
신동엽은 3인 1조로 데스매치를 벌이는 패자부활전 룰을 설명한 후 “이 중 단 한 명만 생존한다”고 밝혀 긴장감을 고조시켰습니다.
또 연예인 마스터가 아닌 국민 평가단이 직접 투표한다는 소식을 전해 “잔인하다”는 탄식을 터지게 했습니다.
곧이어 무대 위로 9명이 불러야 하는 지정곡이 바로 전달됐고, 전유진과 유민지, 요요미가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김다현과 하이량, 강혜연이 ‘안동역에서’, 류원정과 두리, 신미래가 ‘수은등’을 택해 단 30분간의 즉석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다시금 무대에 오른 이들은 “이 갈았는데 진짜?”, “30분 연습한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라는 감탄이 연신 터질 만큼, 모든 것을 내건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 현장을 열기로 휘감았습니다.
결국 전유진과 김다현, 두리가 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으며 구제돼 준결승전에 진출했습니다.
이날 ‘현역가왕’은 대국민 응원 투표 6주 차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위 전유진, 2위 김다현, 3위 마이진, 4위 강혜연, 5위 박혜신, 6위 마리아, 7위 류원정 등 순이었는데 이는 준결승과 결승 점수에 최종 반영됩니다.
전유진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 노래는 17일 저녁 9시 현재 MBN 뮤직에서 56만뷰를 돌파했고 칭찬 댓글만 1만개에 달합니다.
한편, '소녀와 가로등'은 1977년 8월 1일 개최된 제 1회 MBC 서울가요제에 출전하는 신인 여가수 진미령을 위해 당시 천재소녀로 불리던 16세의 장덕이 선물한 곡입니다.
이후 장덕은 당시 가요제의 규정대로 작곡자로서 자신의 곡을 부르는 가수 진미령과 함께 서울가요제의 최종예선을 통과, 본대회에 출전하는 자격을 얻어 입상하였고 본 대회에서 빵모자를 눌러 쓴 깜찍한 모습으로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진풍경을 연출하였습니다.
고등학생 장덕이 작곡을 했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놀랍지 않나요?
'소녀와 가로등' 노래는 장덕과 오빠 장현 듀엣 '현이와 덕이'에 의해서도 두 번이나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또 1987년 장덕의 솔로 정규 4집 음반 '이런게 아니었는데'에 수록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이 곡은 이선희, 변진섭, 조관우, 홍진영, 김희갑과 미스틱무드 오케스트라, 이은하, 테이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지난 2015년 5월 종방된 KBS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도 어쿠스틱 콜라보에 의해 OST로 리메이크 된 적이 있습니다.
장덕은 1961년생으로 대한민국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작사가, 작곡가, 음반 프로듀서로 활동했습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장덕의 작품은 총 136개 입니다.
장덕은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였던 아빠 장규상과 서양화가였던 엄마 이숙희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엄마의 영향으로 오빠 장현은 바이올린을,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시절부터 자라났습니다.
장덕이 서울흥인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종교적, 그리고 성격적 불화로 인하여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장덕은 KBS '누가 누가 잘하나' 등 동요 경연대회에 여러번 나가 1등을 수상, 이때부터 장덕은 오빠가 준 기타로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1974년 서울 사범대학 부속중학교에 입학하였고, 이후 장덕의 어머니는 장덕의 음악적 재능을 살려주고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당시 인기를 끌던 미국의 남매듀엣 카펜터스처럼 맏이 장현과 함께 남매 듀엣을 결성시켜 줍니다.
1975년 4월 만 13세가 된 장덕은 오빠와 함께 '드래곤 래츠'라는 듀엣명으로 통기타를 메고 아메리칸 엠버시 클럽에서 열린 미8군 주최의 파티 무대에서 '투 비 어 차일드 어게인(To Be A Child Again)' 노래로 데뷔합니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 남매는 곧바로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되었고, 1개월 뒤 TBC TV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오라오라'에 출연해 장덕이 작사 · 작곡한 '꼬마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일반 무대에 데뷔하게 됩니다.
장덕의 '꼬마인형' 노래는 전유진이 현역가왕에서 부른 노래 제목과 같습니다.
다만 전유진이 부른 '꼬마인형'은 최진희가 부른 노래로 제목만 같고 노래는 다릅니다.
이후 남매는 드래곤 래츠에서 '현이와 덕이'로 듀엣명을 바꾸고 '친구야 친구', '사랑한다고 말해주오' 등 3곡이 수록된 옴니버스 형식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김응천 감독, 임예진, 이덕화, 전영록 주연의 영화 푸른교실에서 오라오라에 출연해 불렀던 '꼬마인형', '일기장'을 사운드트랙으로 싣게 됩니다.
1977년 4월 고등학교 1학년의 장덕은 명보극장에서 개봉된 임원식 감독의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서 주연으로 출연합니다.
한달 뒤 장덕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 이사로 인해 집들이에 참석한 가수 송창식은 장덕이 중학교 2학년 때 작사,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을 장현이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자 감탄을 하며 이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할 것을 적극 권합니다.
결국 송창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장덕은 '소녀와 가로등'을 신인가수 진미령에게 주며 작사, 작곡가로서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 출전합니다.
같은 해 7월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박태원 감독의 영화 '선생님 안녕'에서 장현은 임예진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장덕 또한 장현의 동생 역으로 출연하였습니다.
1978년 4월 장덕은 1970년대 하이틴 영화의 붐을 주도했던 세 명의 감독 김응천, 석래명, 문여송이 모여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1화에서 다시 주연으로 출연하였습니다.
1978년 7월 장덕은 제1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오빠 장현이 부른 '더욱 큰 사랑'의 작사, 작곡가로서 출전, 2년 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게 됩니다.
1979년 6월 제2회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박경희가 부른 '사랑이었네'가 가야금상을 수상하며 장덕은 작사, 작곡가로서 3년 연속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입상하는 기록을 세웁니다.
미국으로 이민가 살고 있던 그녀의 친어머니는 한국식품점에 갔다가 우연히 1년이 지난 1979년 9월 9일자 선데이서울 주간지를 통해 장덕의 자살 소동 기사를 접하게 되고 충격을 받아 장덕을 간곡히 불렀습니다.
1981년 장덕은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벨몬트 칼리지 음악과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테네시 주립대학교 실용음악과로 옮기게 되며 그곳에서 음악의 기초 · 이론 · 감상 · 작곡 · 작곡기법 등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장덕은 1981년 미국에서 리패밀리 활동 중 만나 이승언과 결혼하지만 1983년 10월 이혼을 하게 됩니다.
장덕은 가수 생활의 추억, 그리고 아버지 · 오빠 · 친구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고국에 대한 향수병에 걸려서 어머니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메모 한장만을 남기고 한국으로 귀국,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어렵게 서라벌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고 정규 1집 '날 찾지 말아요'를 발표하는데 당시 방송을 가장 많이 탄 노래 3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984년 10월 장덕은 이미례 감독, 김진아 · 남궁원 주연의 개봉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딸'에서 음악감독을 맡았습니다.
1984년 11월에는 타이틀곡 '사랑하지 않을래'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하지만 대중 반응이 조용하자 실망했습니다.
장덕은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틀어박혀 우울히 보냈고 식음을 전폐하며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혼자만의 세계에서 신음하게 됩니다.
방송국에서 출연 섭외 전화가 와도 "장덕이 없어요" 한 마디만 던지고 전화를 끊을 정도였습니다.
동생의 이런 안타까운 소식에 오빠 장현이 1985년 4월 울산에서 서울로 상경, 장덕에게 현이와 덕이의 재결성을 제안하게 됩니다.
1985년 6월 장현 · 장덕 남매는 7년만에 재결합, 현이와 덕이를 결성하며 타이틀곡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 등의 곡들이 수록된 정규 2집을 발표합니다.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는 단숨에 가요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었고 장덕의 막힌 숨통을 트게 해주었습니다.
1986년 5월에는 장덕이 작곡한 곡들 중 가장 훌륭한 곡으로 평가받으며 훗날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는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 동료가수 이은하에 의해 발표됩니다.
1986년 6월 오빠 장현과 추구하는 음악세계가 달랐던데다가 솔로로서의 욕심이 생긴 장덕은 더 이상 듀엣 활동을 이어나가지 않고 솔로 정규 3집 '님 떠난 후'를 발표합니다.
포크뮤직에 디스코가 섞인 타이틀곡 '님 떠난 후'는 KBS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 골든컵을 수상하였고 MBC 라디오 인기가요, KBS 2FM 인기가요 광장, 전국 DJ 연합회 등 각종 인기 순위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1986년 1987년 장덕은 제 2의 전성기를 보내며 가장 성공한 여성스타로 인정받았습니다.
1987년 7월 장덕은 '이별인 줄 알았어요'를 발표했는데 '가요톱텐 등에서 순위권에 오르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1989년 2월 오빠 장현은 그동안의 밤무대 일을 모두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장덕의 매니지먼트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여의도에 코아기획이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합니다.
그런데 장덕의 새 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해'의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을 때였던 1989년 6월 18일 장현은 국립의료원에서 설암 3기 판정을 받습니다.
암 발병 사실을 숨기려던 장현은 결국 앨범 작업 막바지에 장덕에게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녀는 자신의 일에 신경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이라고 여기며 오빠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얼마 후 타이틀곡 '예정된 시간을 위해' 등이 실린 정규 6집을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1990년 1월에는 어렵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KBS 신년 특집극 드라마 '구리반지'에 주연으로 출연, 억척스럽고 발랄한 스무살 여성을 맡아 오랜만에 연기 활동도 하였지만 앨범 활동 중,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게 되자 장덕은 활동을 중단하고 오빠의 병간호를 하게 됩니다.
오빠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가수활동을 중단하며 오빠의 병간호를 하던 장덕은 점점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1990년 1월 20일 장덕은 모처럼 가요 프로그램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는데 이것이 장덕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장덕은 1990년 2월 4일 오전 2시 50분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 진주아파트 5동 1008호 안방에서 장덕은 감기약과 기관지 확장제, 소량의 수면제 세가지 약을 일시에 복용한 후 쇼크로 별세했습니다.
천재소녀 장덕은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것입니다.
그 해 6월 장덕 · 장현 남매의 매니저로서 그들이 죽는 날까지 항상 함께 했던 김철한의 기획하에 전영록, 이선희, 변진섭, 김범룡, 박혜성, 최성수, 진미령, 임종환, 위일청, 지예, 양하영, 임지훈 등 12명의 동료가수들이 참여한 장덕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발표됩니다.
설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던 장현은 7월 중순경 병세가 악화돼 향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덕 남매의 노래는 우리 곁에 남아서 추억하게 됩니다.
전유진이 부른 노래 '소녀와 가로등'을 계기로 '천재소녀' 장덕에 대해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소녀와 가로등' 노래는 장덕이 작곡했을 당시 나이와 전유진이 부른 나이가 비슷한 고등학생 시기라서 더욱 오버랩되어 스칩니다.
물론 장덕과 전유진은 무려 45년이나 출생년도 차이가 날 정도이고, '소녀와 가로등'이 발표된지 또한 45년이 지났습니다.
어쩌면 전유진은 고등학생 장덕이 작곡한 첫번째 히트곡 '소녀와 가로등' 발표 45주년을 기념해 노래했는지도 모릅니다.
전유진이 '천재소녀'로서 건강하게 오랫동안 한국 가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가수로 건승하기를 바랍니다.
전유진의 준결승 진출을 축하하고 현역가왕에서 좋은 성적으로 일본과의 결전에도 나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