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당시 안철수연구소(현재 안랩) 커뮤케이션팀장 이야기입니다.
이전에는 LG그룹 LG전자에서 홍보과장을 했기 때문에 대기업 문화에 익숙한 상황이었습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오너에 대한 기본적인 이미지를 생각했기에 CEO인 안철수 박사와의 만남은 계속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안철수 CEO에게 운전기사가 없었던 이유'는 2002년 1월경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안철수 박사는 2011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되면서 운전기사를 처음 두게 됐습니다.
이 이야기는 2012년 5월 발간된 '안철수, He Story' 내용을 그대로 발췌한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안철수 박사는 CEO 시절 자가용 운전기사가 없었다. 본인이 직접 운전했다. 회사의 최고경영자이자 사회적으로 저명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한 일이다. 왜 그랬을까?
안랩에 다니던 시절 나는 운전을 잘하지 못했다. 자가용은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만 운전할 뿐 평소에 출퇴근은 물론 외출을 할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운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바로 안철수 박사와 함께 외근을 나갈 때 였는데, 사장인 그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가기가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번은 어떤 빌딩의 주차장에 들어가는데 한 경비원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안철수 박사를 운전기사로 착각한 것이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장님, 이제 운전기사를 둬야 하지 않을까요? 운전기사를 두면 이동하는 동안 책도 읽고 의사결정할 서류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을 위해 운전기사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안철수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아직 운전기사를 둘 입장이 아닙니다. 만약 운전기사를 둘 여유가 생긴다면 회사에 필요한 직원을 한 명 더 채용하겠어요. 그러면 바쁜 우리 직원들 일을 좀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직원들과 회사를 먼저 생각해주는 CEO가 있다니'하고 놀랐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회사는 운전기사를 채용하기에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CEO를 그만둘 때 까지 운전기사를 채용하지 않았다.
안철수 박사는 그후 카이스트 석좌교수 시절에도 운전기사가 없었다. 그 무렵 그는 대전에 살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정들로 인해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자가용을 손수 운전하거나 기차를 이용했다. 언젠가 그와 함께 기차를 탄 적이 있는데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미소와 함께 사인받는 사람의 이름을 먼저 쓰고 'Ahn'이라고 큼지막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런데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부임하면서부터는 운전기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매일 서울의 집과 수원의 학교를 오가며 왕복 2시간 이상을 도로에서 허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박사는 자신의 돈으로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나는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그의 자가용을 함께 탄 적이 있는데 그가 손수 운전할 때 보다 안철수 박사도 나도 한결 여유가 있었다. 그는 차 뒷좌석에서 책을 읽고 하루 업무를 정리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제 그가 운전하는 자가용에서 얼굴 화끈거릴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문득 안철수 박사의 운전기사를 하고 싶다던 기자가 떠올랐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혹시 안철수 박사가 운전기사를 채용하면 꼭 제게 알려주세요. 저는 운전하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는 오랫동안 안랩을 출입했던 기자였다. 그런 그가 왜 안철수 박사의 운전기사 자리를 탐냈을까? 그는 나와 소주를 한잔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안철수 박사는 인생을 따분하게 사는 분이에요. 솔직히 너무 정직하게 살아가잖아요. 그렇지만 그와 함께 있으면 많은 것을 배우게 되지요. 그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만 해요.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지만 그이 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깨끗해지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죠. 그래서 안철수 박사의 운전기사를 하고 싶어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어렸을 적에 험하게 자랐다. 학창 시절에는 염세주의에 빠져 세상을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사회에 나온 후에는 세상과 타협했고 그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정의로운 사회란 없으니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남들 역시 그렇게 살아간다고 애써 자위했다.
그러나 안철수 박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도덕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정직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도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