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예서 이름이 최근 26일 네이버 검색에 공식적으로 등록됐습니다.
빈예서는 빈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된 것 같은데 빈씨 성 유래를 비롯 다양한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빈예서는 현재 경남 가람초등학교에 재학 중 입니다.
빈예서는 2012년 11월 14일생으로, 용띠인데 올해 용띠, 청룡의 해 입니다.
서양의 점성술에서는 10월 23일에서 11월 22일까지를 전갈자리라고 합니다.
전갈자리(Scorpius)는 황도를 지나는 남쪽 하늘의 별자리로, 황도12궁 중 하나이며, 은하수 중심 부근이 됩니다.
빈예서는 영어 표기는 Bin Ye Seo 입니다.
특히 한자 이름 빈예서 賓玴庶 중에서 뜻을 보면 손 빈(賓), 옥돌 예(玴), 여러 서(庶) 입니다.
옥돌이 많다는 의미이니까 빛나는 옥돌이 여러 개인 만큼 대중연예계에서 빛나는 스타가 될 이름인 듯 합니다.
빈 씨는 한국, 중화권, 월남의 성 씨입니다.
빈 씨는 중화의 오래된 성씨로 갑골문자에 따르면 기원전 1250년, 지금으로부터 3270년 전에 황실에서 천문을 관장하는 사관으로 일하는 등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귀족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멸족의 화를 입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빈씨 성이 2개인데 손 빈(賓) 이외에도 빛날 빈(彬) 씨 성이 있습니다.
손 빈 씨는 약 5600명, 빛날 빈 씨는 약 170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 성씨인데 손 빈씨가 97%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빈예서가 살고있는 경남 진주에는 빈씨가 12명 있습니다.
그렇다면 손 빈 賓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볼까요?
빈賓은 '손 빈'이라는 한자로, '손님'을 뜻합니다.
빈이 들어간 단어는 국빈(國賓) 귀빈(貴賓) 내빈(來賓) 영빈관(迎賓館) 등이 있습니다.
지명에도 빈이 들어간 곳이 2개가 있는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快賓里),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대빈창길(大賓倉길) 입니다.
역사를 공부했다면 기억이 날텐데 중국 당나라에 빈공과(賓貢科)가 있었는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시험으로, 최치원이 급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객(客)과 빈(賓)은 둘 다 손님인데 어떻게 다를까요?
객이나 빈은 둘 다 종가를 찾아 온 손님이지만, 객은 과객(過客)의 용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주인의 사전 초청을 받지 않고 지나가다 방문한 나그네 손님을 말합니다.
반면에 빈은 주인의 초청을 받고 온 손님을 말합니다.
손님이 종가에 들어서면 객에게는 식혜를, 빈에게는 수정과를 대접한다고 합니다.
식혜는 손님을 맞는 순간 항아리에서 한 그릇 떠 내 오면 그만이지만, 수정과는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곶감을 한 두 개 집어 넣고 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떠 와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빈씨 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빈賓 씨는 대구 수성, 전남 담양, 전남 영광 세 본관이 있습니다.
고려 원종대 태자 충렬왕의 왕후가 될 제국대장공주를 호위하여 원나라에서 들어온 빈은후(賓殷厚)를 기원으로 합니다.
그의 손자 빈서기(賓瑞奇)가 카다안의 침입 때 공을 세워 수성군(壽城君)에 봉해졌습니다.
중시조는 수성현(壽城縣) 출신의 빈우광(賓宇光)인데 정동행성에서 치러진 과거에 급제하여 원나라로 가 한림학사를 역임하다가 수많은 서적을 갖고 고려로 돌아왔습니다.
고려 충숙왕은 이 공으로 그를 수성군에 봉했습니다.
대구 빈씨 대종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대구 빈씨의 시조는 빈우광(賓宇光)이다.빈우광(賓宇光)은 남송에서 벼슬(한림학사)을 하다가 남송 멸망 후 중국의 중요한 서책들을 수만권 가지고 고려말 충숙왕 때 고려에 귀화하였다. 그 공로로 대구의 수성군을 하사받아 정착하며 수성을 본관으로 사용하였다. 훗날 지명의 변경등으로 전국을 통일하여 대구로 본관을 통일한 것이다. 대구 빈씨는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충신 집안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되고 달성, 수성, 대구 외의 본관들은 대부분 그 정착지에 오래 살면서 그 지명을 따서 본관을 정한 경우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후 전국의 빈씨 대표자들이 모여 대구를 본관으로하는 대동보를 만들어 본관을 대구로 통일하였다. 대구 도동 팔공산 자락에 시조묘소가 있으며 봄철 한식날을 전후하여 시조묘제를 지내고 있다. 호적상으로 본관을 바꾸는 것은 절차적으로 재판을 받는 등의 번거로움이 있어 일부는 법적으로 아직도 대구가 아닌 달성, 수성, 대전, 여수. 밀양 빈씨로 호적에 올라있는 경우가 많으나 점차로 바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인물로는 빈지태, 경상남도 함안군 제2선거구 도의원, 빈찬욱 배우, 빈하늘 아이돌학교 참가자, 빈태환 드라마 촬영감독, 빈대인 BNK 금융그룹 회장 등이 있습니다.
참고로 BNK는 부산은행을 모태로 하여 경남은행을 인수한 금융그룹인데 BNK는 부산 앤 경남의 약자입니다.
과거 인물 중에는 대구 빈씨 항일투사 빈광국, 빈상철, 빈영섭, 빈영홍, 빈태문 등 5인이 있습니다.
그 중 빈태문은 진주 출신으로 빈영호 전 경상대학교 총장의 숙부이며 진주청년동맹, 신간회 진주지회 상무간사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하여 서대문감옥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습니다.
앞으로는 빈씨 성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빈예서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빛날 빈彬 성씨는 대구, 달성 두 본관이 있는데, 모두 대구와 동조동원으로 보입니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운학리, 현재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에 살던 빈영선(彬永先)씨는 자신의 선조는 몽골인으로, 청나라 광서제 때 원외랑(員外郞)을 지낸 빈문(彬文)이라고 했습니다.
빈문이 당시로부터 20대 이전 대구광역시로 이주해 오면서 살게 되었다고 하였으며, 용인군 포곡면 삼계동, 현재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삼계리에 살던 빈봉구(彬鳳求)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450년 전 대구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주해 왔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즉 청나라 광서제 때 원외랑을 지낸 빈문이 우리나라 빛날 빈씨의 시조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가 대구에 정착하여 살았기 때문에 본관을 대구로 유지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유튜버 콩빈, 본명 빈연주는 빛날 빈씨 성으로는 알려진 인물입니다.
빈 씨는 현실에서는 매우 적은 희귀 성씨이지만 의외로 세련되고 고귀하면서 화려한 어감 때문에 반씨, 은씨처럼 로맨스 소설, 무협 로맨스, 양로소, 일진물, 할리퀸 인터넷 소설 등 매체에서 오히려 훨씬 더 출연하는 성씨입니다.
서브컬처를 통해 잘 알려진 성씨라며 1980년대 김동화 화백의 만화 요정 핑크에 등장한 인물인 빈씨 때문이라고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당 인물은 성이 빈씨가 아니라 이름이 '빈'이기 때문입니다.
작중에서 사진 전시회에 출품된 빈씨의 작품 아래에 '출품자 빈'이라고 쓰여 있는 장면이 나오고 또한 빈의 아버지도 아들을 이름으로 '빈' 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빈예서는 TV조선 오디션 미스트롯에서 국민투표 1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식 팬카페 회원수가 26일 3000명을 넘어가면서 미스트롯3 출연자 중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팬카페 회원수를 살펴보면 오유진은 2500여명, 정서주는 2300여명 입니다.
10대 나이 가수 중 팬이 많은 곳은 전유진 팬카페 11500여명, 김다현 팬카페 8900여명 입니다.
빈예서는 미스트롯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전유진 김다현과 함께 빈예서가 팬카페 순위를 다툴 전망입니다.
빈예서의 네이버 검색 등록을 계기로 빈씨 성의 유래 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