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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양어머니와 여동생 등 세 모녀 반란 상속회복청구 소송 전말 총정리...해외언론 상대 감정싸움...구자경, 양자 선택...구본무 CFO 증언...장자 장남 승계 원칙 전통 이유

탐진강 2023. 12. 2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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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세 모녀로부터 소송을 당한 이후 점점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는데 이제는 해외 언론을 상대로 싸움을 키우고 있습니다.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낸 구광모 회장의 양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들인 첫째 딸 구연경 LG 복지재단 대표, 둘째 딸 구연수 씨가 뉴욕타임스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소송 배경을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LG 측은 "원고 세 모녀 측이 합의와 다른 일방적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으로 반박했습니다.

이 싸움은 구광모 회장이 양자였기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구광모 회장과 나이가 같고 불과 한 달 늦게 태어난 첫째 사촌 여동생 구연경 대표의 시각도 감안해 보면 이해가 빠를 수 있습니다. 


그녀는 구광모 회장이 양자로 오지 않았다면 LG그룹의 후계자로서 회장에 오를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소송이 왜 양자인 구광모 회장과 양어머니와 친동생이 아닌 여동생 구연경 대표 등 2명의 관계 때문으로 보는 지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구체적 이야기 시작합니다.

먼저 뉴욕타임스에 실린 세 모녀의 주장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는 2021년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유산에 대한 상속 합의 내용에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구연경 대표가 신용카드 발급을 신청했지만, 채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이상함을 느낀 것입다.


구연경 대표는 어머니과 여동생 구연수 등 LG 세 모녀의 계좌를 다 확인했고, 그 결과 이들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거액의 상속세가 납부된 사실이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LG 주식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이 발생한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018년 별세한 구본무 전 회장은 LG 주식 11.28%를 비롯해 약 2조원 규모의 재산을 남겼고, 세 모녀는 이 중 5천억 원 규모의 유산을 상속했습니다.

세 모녀에 따르면 양자인 구광모 회장이 LG 지분 8.76%를 포함해 더 많은 유산을 상속하는 대신 상속세를 혼자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 모녀가 직접 상속세를 부담하고, 대출까지 받게 됐다는 것입니다.

또한 세 모녀는 구광모 회장이 당초 자신들이 합의한 것보다 훨씬 많은 유산을 받은 것도 알게 됐다고 합니다.

구연경 대표는 “이상하지 않나, 우리 돈인데 우리가 얼마를 갖고 있는지 몰랐다”며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세 모녀가 밝힌 상속 소송 관련 내용에 대해 LG 측은 “합의와 다른 일방적 주장에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LG 측은 “세 모녀 측 인터뷰 내용은 이미 법정에서 증거들을 통해 사실이 아님을 입증했다”며 “재산분할과 세금 납부는 적법한 합의에 근거해 이행돼 왔다”는 강조했습니다.

앞서 구광모 회장 대리인 법무법인 율촌 측은 “상속은 4년 전 광범위한 협상 끝에 해결된 ‘법적으로 정리된 사안"이라며 "구본무 전 회장 사망 이후 10여 차례 협의와 수차례 수정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상속세 문제에 대해 구광모 회장은 지난 1월 양어머니 김영식 여사에게 편지를 보내 "상속세를 낼 현금이 부족해 직원들이 세 모녀 계좌에서 자금을 융통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세 모녀 계좌에서 융통한 자금도 되갚을 계획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만 구광모 회장은 편지에서 “한국 상속법 체제에서 어른들이 각자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면 LG 경영권이 4대까지 승계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김영식 여사에게 상속권 주장을 포기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속권에 이의를 제기하면 LG의 이미지와 회사 리더십에 타격을 주고, 자신의 명예도 실추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LG 측은 올해 초 성명을 통해 “LG의 전통과 경영권을 흔들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고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 모녀는 지난 3월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을 다시 분할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김영식 여사는 "지난 9월 추석 때 서울 자택에서 열린 100명이 넘는 LG 가문 모임에 구광모 회장이 참석했다"면서 "구광모 회장과 세 모녀 사이에 어색함이 맴돌았다"고 합니다. 

김영식 여사는 “구광모 회장이 우리를 피해 다른 방으로 숨는 것 같았다”며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급히 자리를 떴다”고 얘기했습니다.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을 감정적으로 인신공격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내용도 여과없이 뉴욕타임스에 실렸습니다. 

한편으로 LG 가문이 장자 후계자 원칙에 따른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문제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물론 여성 평등 사회에서 보면 시대에 맞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LG는 구광모 회장에 이르기까지 장자 상속 원칙에 따라 운영됐습니다. 

그래서 구광모 회장의 운명이 달라졌던 셈입니다.


구본무 전 회장이 큰 조카 구광모 회장을 입양한 것은 14년 전으로 승계는 사실상 확정됐었습니다. 

1994년 10대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후 LG 전통에 의해 또 다른 아들 상속자를 위한 그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둘째 딸 구연수를 낳게 됐습니다.

아들 장자 후계자가 없게 되자 당시 LG 구자경 2대 회장은 구본무 회장과 김영식 여사에게 당시 26세였던 구광모 회장을 입양하도록 강한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구자경 2대 회장은 김영식 여사에게 시아버지였기에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들이 죽은 지 10년이 지난 후, 구본무 전 회장과 김영식 여사 부부는 마침내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입양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김영식 여사는 “시아버지에게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음악가로 알려진 둘째 딸 구연수 씨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아들을 잃은 아픔은 후계 문제로 인해 더욱 가중됐다”며 “내가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구본무 전 회장은 73세의 나이로 201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김영식 여사 등 세모녀는 구광모 회장과 다른 LG 임원들이 회사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고 자신들의 정당한 유산을 횡령하기 위해 속임수를 쓴다고 비난하며 구광모 회장을 고소하게 된 것입니다.

다만 세 모녀는 "완전한 상속을 원하지만 LG에 대한 경영권을 노리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세 모녀는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가 무시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소송에 제출한 통지문에 적었다고 합니다.

세 모녀의 주장을 들어보면 상속법 원칙으로 보면 틀린 내용이 아닌 듯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구광모 회장이 양자가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당연히 세 모녀는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고, 해외 언론에 대고 아들 그리고 오빠를 비난하지 않았을 겁니다. 

더욱이 1947년 LG그룹 창립 이래 LG 오너 사이에서 가족 간 분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나라 재벌가에선 재산을 두고 가족간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나 LG는 75년간 한 번도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양자 구광모 회장과 세 모녀 사이의 몇가지 사실입니다. 

첫째, 지금까지 보면 구연경 대표가 가장 강한 불만을 가진 것으로 관측됩니다.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는 1978년 1월생인 구광모 회장과 불과 한 달 차이로 늦게 태어나 사촌 여동생이 됐습니다. 

따라서 당시 구광모 회장이 양자로 입적해 LG그룹 후계자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더욱이 당시 이미 26세로 성인이었던 구연경 입장에선 이해가 힘든 상황일 수 있습니다. 

구광모 회장 친아버지는 구본무 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입니다. 

둘째, 구연경 대표가 불만을 품었다면 가장 가깝게 얘기 나눌 인물이 남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 입니다. 

역성 혁명을 노리는 윤관 대표가 소송을 부추겼다는 배후설이 언론 등에서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윤관 대표는 더욱이 미국계 사모펀드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경영권에 대한 지식은 물론 윤관 대표의 아버지와 친분있는 변호사가 소송에 참여한 이력 등이 의혹을 갖기도 했습니다. 

구연경 대표의 남편 윤관 대표


현재 구연경 대표와 윤관 대표 부부는 고 구본무 LG 회장의 한남동 자택에서 김영식 여사와 구연수 씨 등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셋째, 왜 5년 이나 지난 후 소송까지 했는지 의문입니다. 

2018년 5월 구본무 회장 타계 당시는 김영식 여사의 시아버지 구자경 2대 회장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구자경 회장은 2019년 12월 타계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은 구본준 회장은 LG에 적을 두고 있었던 터라 세 모녀의 반란이 쉽지 않았다고 관측됩니다.

구본무 회장의 둘째 동생 구본준 회장은 2021년 LX그룹을 만들어 LG에서 계열 분리합니다. 

결국 세 모녀는 그간 불만을 품어왔는데 때를 기다렸다가 올해 초 반란을 일으킨 셈입니다.



그렇다면 법원에서 밝혀진 LG 측 상황도 살펴볼까요? 

2017년 4월 어느날 서울대병원 특실, 악성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수술을 앞둔 구본무 LG 그룹 회장은 수술에 앞서 2가지 서류에 자필 서명했습니다.

당시 서명한 문서는 전날 LG 임원을 통해 준비시킨 것이었습니다. 

앞서 구본무 회장은 전날 병문안 온 당시 구광모 상무 부부와 장녀 구연경 부부에게 "잠깐 병실에서 나가 있어라"고 한 후 LG재무관리팀장인 하범종 전무, 현재 경영지원부문장 사장을 불러 혹시 수술이 잘못될 경우에 대비해 두가지를 당부했습니다.


하나는 "수술 중 응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가족 서명 '연명치료 포기서'를 잘 보관하고 있으라"는 말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본무 회장 유고시 양자인 '구광모 당시 상무에게 경영권 재산을 전부 넘기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모두 병실에서 내보내고 회사 임원에게 이를 조용히 말한 이유는 혹여라도 자녀들이 섭섭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하범종 전무는 이같은 구본무 회장의 구두 메시지를 듣고 그날 바로 회사에 들러 그 내용을 A4용지 1장으로 정리해 이튿날 구본무 회장에게 전달했고 구본무 회장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이 메모에 자필서명했습니다. 


구본무 회장 유고시 공개할 목적이었으나 4월 첫 수술이 잘 마무리되면서 별도로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8개월 후인 12월 뇌종양이 재발해 재수술을 하게 됐을 때 구본무 회장은 다시 한번 하범종 전무에게 1차 수술 때 작성한 메모에 대해 "비상시나 유고시 이렇게 진행하면 된다"고 재확인했다고 합니다.

구본무 회장은 당시 세계적 권위의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 가서 수술할 것을 권하는 지인들에게 "서울대병원에서 치료 못하는 것이면 존스홉킨스에 가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감한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구본무 회장은 2차 수술 이후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5개월 후 타계하면서 당시 하범종 전무는 자신에게 챙기라고 한 2가지 문서를 가족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위독한 상황이 됐을 때는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문서대로 구본무 회장은 연명치료 없이 영면했습니다. 


또 그의 타계 후 상속분할협의 과정에서는 '경영권 지분은 구광모 회장에게 전부 상속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광모 회장 등 가족들에게 공개했습니다.

공동 상속인인 이들 외에도 구본무 회장을 오랜 기간 보필했던 강유식 LG 부회장과 구자정 고문도 이 메모를 확인했습니다. 

나머지 구본무 회장의 동생들의 경우 가풍에 따라 당연히 장자에게 경영권이 승계된다는 인식이어서 별도로 이 메모를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게 현재 하범종 사장의 증언입니다.

이같은 증언은 지난 10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하범종 사장이 상속회복청구소송 첫 변론기일에 밝힌 내용입니다. 


하지만 구광모 현재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양어머니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들은 이같은 문서를 보지 못했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메모는 공동상속인들 모두 2018년 11월 상속재산분할합의서에 서명했고, 상속세 관련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모두 끝나 메뉴얼에 따라 폐기했다는 게 하범종 사장의 증언입니다.

그런데 일반 가정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LG의 경우 재산이 '개인재산'과 '경영재산'으로 분리돼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재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영재산은 LG그룹을 경영하기 위한 주요 계열사 지분을 말합니다. 


LG 재무팀에는 주식회사 LG와 주요 계열사 지분을 관리하는 '경영재산' 관리담당과, 이와는 별개로 회장 가족의 개인재산을 관리하는 '개인재산' 담당이 있습니다.

재판에서 세모녀 측 대리인이 '경영재산'과 '개인재산'을 구분할 수 있느냐고 하범종 사장에게 질문하자 하범종 사장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각 재산은 각각 다른 팀원들이 나눠서 관리하고 있어 업무가 중복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선대 구본무 회장이 "경영권 재산은 구광모에게 전부 상속한다"고 했을 때 헷갈릴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LG에선 구자경 명예회장 때부터 LG 그룹의 안정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 친인척으로 구성된 '주주단'이 있었고 이 주주단의 운용에 대한 기본 지침도 내부적으로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2003년 LG가 지주회사로 전환한 직후 주주단에는 구씨 일가 외에도 동업자였던 허씨 일가까지 총 60명의 멤버가 있었고, 10년 후인 2013년에는 계열분리한 GS와 LS 등의 멤버가 빠지면서 36명까지 줄었습니다. 

구본무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이 타계한 후 지난 6월말 기준 주주단의 멤버수는 25명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증언에 따르면 이 주주단은 LG가에서 내려오는 공동 지침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 주주단 구성원들이 받는 배당금의 80%는 세금을 내고 남는 금액으로 경영권 지분을 취득했고, 나머지 20%는 각 주주들에게 개별 지급됐습니다. 

80% 중 상당부분이 장자인 회장의 지분율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주식회사 LG 지분 매입에 주로 활용됐습니다.

이런 룰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할 때는 그대로 지켜졌고, 구본무 회장이 있을 때는 개별주주가 가져가는 배당금은 20%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 10%만 가져가는 사람도 있었다는 게 하범종 사장의 증언입니다. 

주주단 구성원들은 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위임했기 때문에 이처럼 운영되는데 이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구본무 회장 타계 직후 한남동 자택에 모인 유족들은 경영권 승계는 구광모 회장으로 한다는데 이의 없이 동의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거론된 구본준 당시 LG 부회장이 임시로 회장직을 승계하는 것에 대해서는 김영식 여사조차 반대하면서 구광모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에는 이론이 없었습니다.


상속재산분할과 관련해서도 핵심 경영재산인 구본무 회장이 보유한 LG의 지분 11.28%는 구광모 회장 몫으로 이전하는데 처음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원래 LG의 가풍이 장자승계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본무 회장의 유지가 담긴 메모에 '경영재산은 구광모 회장에게 모두 넘긴다고'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8월 1차 초안대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하범종 사장이 1차 초안을 들고 한남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김영식 여사가 "딸들이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는 LG 지분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걸 섭섭해 한다"고 해 하범종 사장은 이를 구광모 회장에게 전했습니다. 

구광모 회장은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동생들에게 어느 정도를 주는 게 좋을지"를 하범종 사장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하범종 사장(왼쪽)


하범종 사장은 구광모 회장에게 "선대회장이 안정적인 1대 주주 지위를 확보한 지분이 김영식 여사 4% 포함 15% 정도이니 15%를 넘는 지분은 여동생들에게 넘기는 게 좋겠다"고 제안해 구광모 회장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구광모 회장은 자신이 원래 보유하고 있던 6.24%와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11.28%를 합친 LG 지분 17.52% 중 15%를 넘어서는 2.52%를 구연경 2.01%, 구연수 0.51%를 넘겨주기로 합의했습니다.

8월 1차안 당시에는 구광모 회장이 선대회장의 LG 경영권 지분 11.28%를 전량 상속받는 대신 나머지 세사람이 내야할 상속세를 대신 납부하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9월말에서 10월초 작성된 2차 상속재산분할합의안에서 LG 지분 2.52%를 두 여동생에게 넘겨주기로 하면서 상속세는 각자가 내는 것으로 변경했습니다. 


상속하는 만큼 각자가 상속세를 부담키로 한 것입니다.

다만 LG가의 각종 제사나 집안 행사가 열리는 상징적 장소인 한남동 고 구본무 회장 자택의 경우 주택의 소유권은 김영식 여사와 두딸에게 넘기되 구광모 회장이 LG의 장자로서 해당 건물의 상속세는 자신이 내는 것으로 했습니다.


이러한 2차 안을 갖고 최종 합의서에 인감날인하려고 하범종 사장이 찾아갔을 때 다시 김영식 여사와 구연경 대표가 다시 이견을 나타냈습니다. 

당초 3곳이던 기부처를 자신들이 관련된 단체로 확대해 약 10곳으로 기부처를 늘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를 담은 3차 합의서가 11월초에 작성됐습니다.

구본무 회장이 소장했던 개별 미술품의 경우 '연경', '연수', '김영식'이라고 그림 목록 옆에 이름을 하나하나씩 써가며 누가 가질지에 대해 정리하는 등 약 5000억원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빈틈 없이 세밀하게 챙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 김영식 여사는 상속분할동의서에 '본인 김영식은 고 화담 회장님의 의사를 좇아 한남동 가족을 대표해 ㈜LG 주식 등 그룹 경영권 관련한 재산을 구광모에게 상속하는 것에 동의함'이라는 문구 아래에 서명했습니다.


화담은 고 구본무 선대회장의 호 입니다. 

"상속재산 분할과정에 깊은 논의 없이 유언장이 있다는 말만 믿고 재산분할에 동의했다"는 세 모녀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든 다양한 상속 논의 과정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셈입니다.

한편, LG는 앞서 구자경 명예회장이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길 때도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60%를, 나머지 아들인 구본능, 구본준, 구본식에게는 10.7%씩 총 32%를, 두딸인 구훤미, 구미정에게는 각 4%씩 총 8%를 상속했습니다. 


장자에게 경영권 지분 대부분을 넘긴 셈입니다.

또 지난 2020년 타계한 구자경 명예회장의 남은 재산은 아들들이 아닌 장손인 구광모 회장에게 모두 상속했습니다. 

이 상속에도 김영식 여사 등 원고들은 상속에 이의가 없다고 서명했다고 하범종 사장은 증언했습니다.

이번 첫 변론기일에서는 김영식 여사와 장녀인 구연경 대표 외에 공동상속인인 막내딸 구연수 씨에게 상속과 관련한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을 쟁점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에 대해 하범종 사장은 "구본무 회장이 생존해 있을 때는 구본무 회장이 가족들에게 재산관리에 대해 설명했고, 구본무 회장 타계 후에는 김영식 여사가 구연수 씨를 대신해 'YSK'라는 사인을 하면서 대리했다"며 상속재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법적으로 오가는 모든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구광모 회장이 양자가 아니면 소송이 걸릴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자경 회장이 생존해 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장자 승계 원칙이 지금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제도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전 시절로 돌아가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고 구인회 창업주는 5형제의 장남이었습니다. 

구인회 창업주는 허씨 가문의 딸과 결혼해 6남 4녀를 낳았습니다. 

구자경 LG 2대 회장은 자녀가 4남 2녀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대부분 가정에 자녀가 많았습니다. 

또 구인회 창업주의 집안은 대대로 문인들을 배출한 유교 가풍이 강했습니다. 

가령 구인회 창업주의 할아버지 구연호 씨는 문과 급제 후 홍문관 교리, 사간원 정언 등을 지낸 선비였습니다.

LG 가문이 유교 가풍에 따라 '장남 승계' 원칙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까닭입니다. 

당시 자녀 사이에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LG는 경영철학으로 '인화'에 이어 '인간존중의 경영'을 지금까지 잇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선 장남에게 아들이 없을 경우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차남의 아들을 양자로 데려오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구광모 회장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장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LG그룹 후계자 양자로 입적하는 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구연경 대표가 분노했듯이, 구광모 회장 또한 이미 친부모가 있는데 20대 나이에 양부모는 물론 새로 두 여동생과 지내야 한다는 것이 상상을 초월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양부모가 아무리 잘해주더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정신적 한계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베이비붐' 시대를 지나 요즘은 자녀가 한 두 명에 불과합니다. 

아들 딸 구분없이 '능력에 따라' 경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장자 승계' 전통이 이어지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구광모 회장의 '마지막 장자의 비애'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입니다. 

구광모 회장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픈 가족사의 중심에 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책임감으로 LG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면서도, LG의 미래를 향한 글로벌 세상의 변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 모녀의 반란'도 그에게 주어진 과제일 뿐입니다. 

올해는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우승했습니다. 

구본무 선대회장이 염원했던 우승이었기에 LG 가문이 모두 환호했지만 누군가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양자의 설움은 개인적 일이지만 LG 회장의 삶은 공적인 삶이기에 구광모 회장은 2024년 신년사에서도  "최고의 고객 경험 혁신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차별적 고객가치에 대한 몰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LG 가문의 소송전은 어떤 결말을 맺을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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